
사람이 교회다
주님이 가르쳐준 주기도문에 “나라가 임하게 하옵시고”는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모든 교회와 크리스천의 기도제목이다. 교회는 건물이 아닌 모든 그리스도인을 말한다. 우리가 곧 교회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사람이다. 주님이 오실 때 까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건설하는 일이 교회의 사명이다. 주님이 이루고자 하는 나라를 오늘 교회는 대신 이어 받아 세상에서 이루어야 한다. 인간이 모인다고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부른 사람만이 교회에 올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다. 교회는 인간의 생각이 아닌 주님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공동체다. 다윗의 영원한 언약에 따라 믿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지금까지 축복해주셨다. 그것을 이어 가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다.
사람이 건물로 바뀐 교회역사
그런데 이렇게 주님의 언약을 이어 간 초대교회와 단절한 사건이 일어났다. 성경에 제시한 하나님이 정한 규례와 설계도대로 교회를 세우기 보다는 이방의 헬레니즘 방식을 본받아 교회를 세웠던 초기교회 역사가 있다. 그것은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였다. 예수와 복음을 선포했지만 방식은 여전히 세상의 방식을 차용했다. 이런 모습이 1000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것을 갱신한 한 사건이 있었다.
500년 전에 마틴 루터가 95개조 논제를 제시한 것은 로마교회에게 질문과 토론을 통한 공개적인 만남을 요청한데서 시작한다.
"진리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부터 그리고 그것을 밝게 드러내려는 열망에서 아래의 논제들은 문학 석사인 마틴 루터에 의하여 비텐베르크에서 공개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루터는 그곳에서 이 주제들에 대하여 강의를 하도록 공식적으로 임명받은 바 있다. 그는 직접적으로 토론에 참여할 수 없는 자들에게는 서신으로 토론하기를 요청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멘."
질문과 토론을 통해 지금 당면한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가 얼마나 성경적인지를 함께 소통하며 발전적인 방향을 찾자는 의도였지만 이런 루터의 제안은 결국은 교황에게 거절당함으로 종교개혁은 생각지 않게 촉발되었다.
결국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는 개혁이 일어나 지금의 개신교가 탄생 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을 통해 본질인 성경으로 돌아가는 역사는 이루었지만 여전히 건물과 외적인 형태는 개혁하지 못하고 이전의 카톨릭 방식을 그대로 가져왔다. 이런 점에서 16세기 종교개혁은 미완의 개혁이었다.
종교개혁을 했던 유럽의 교회들이 사라지고 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에서 벗어난 복음의 핵심을 회복하는데 놀라운 개혁을 이루었다. 하지만 헬레니즘화 된 로마 카톨릭의 이분법 구조는 벗지 못했다. 종교개혁자들이 교회개혁을 이루었지만 그들에게도 한계가 있었다. 그들이 이루지 못한 생활과 방식의 개혁은 오늘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이다. 우리도 역시 원리는 성경을 따른다고 하면서 실제 삶은 여전히 로마 카톨릭 모습과 헬레니즘 스콜라 신학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것에 포로가 되어 지금까지 지배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늘 우리도 종교개혁자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오직 믿음을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선포했지만 어떻게 그 믿음대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부족했다. 그동안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에만 초점을 두다보니 복음으로 삶이 변화 하는 영역은 등한시했다. 그러다 보니 예수복음을 외치는 것과 실제 복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과 일치하지 못함으로 교회가 사회로부터 비난 받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주님의 교회를 복음대로 살아가는 방향에 초점을 두고 복음의 능력을 발휘하는 구조로 교회가 갱신되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 해야 할 선결 과제는 교회를 먼저 바르게 진단하는 일이다. 무엇이 구습이며 벗어야 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 후에 비성경적인 부분을 수술하고 다시 회복하는 실제적인 성경적 솔루션이 필요하다.
왜 예즈덤 미리토크 인가?
이것을 위한 대안으로 필자는 “아드 폰테스 성경”,“아드 폰테스 예수복음“,”아드 폰테스 한국 초대교회 ”를 그리면서 미리토크를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다시 한국교회가 말씀으로 1세기 그 원형교회를 회복하는 그날을 소망 해보면서... 이곳이 엠마오 길을 거닐면서 두 제자와 예수님과 나눈 길거리 담화를 함께 나누는 이야기 현장이 되길 기도한다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묵상하다 보면 떠 오르는 성경의 한 장면이 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것은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전한 유언장과 같은 디모데후서 3-4장에 나오는 내용이었다.
“말세가 이를수록 속이고 속고 더욱 악하여져 하나님을 떠나는 일이 많아진다. 부모를 거역하고 돈을 사랑하고 교만하며 비방하며 감사하지 않고 배신하며 조급하며 쾌락을 더 사랑하고 항상 배우지만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하는 일이 심해진다. 특히 허탄한 세상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바른 교훈을 따르지 않고 자기 욕심에 채워주는 스승을 따르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이런 때 일수록 성경을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하며 때를 얻든지 못하든지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 항상 힘쓰라. 특히 오래 참으며 가르침으로 경책하고 경계하며 권하는 일에 직무를 다하라” 이 메시지는 오늘 필자 뿐 아니라 한국교회를 향한 내용이기도 하다.
한국교회가 어떻게 살 것인가? 그것에 대한 답을 바울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시대의 상황과 상관없이 변하지 않는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 디모데와 같이 제자를 삼는 바울의 마지막 모습은 부활 후에 갈릴리에서 베드로에게(요 21장) 마지막까지 양을 먹이며 제자를 삼는 일에 착념하라고 다시 강조하셨던 주님의 방식을 그대로 닮은 것이었다.
더 이상 새로운 대안은 없다
더 이상의 새로운 대안은 없다. 이리저리 기웃 거리지 말고 본질에 충성하자. 그것은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 지켜 행하게 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 일에 전심전력해야 한다. 특히 이일을 위해 앞장 서야 할 사람은 지도자이다. 말씀을 붙잡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는 일이다. 주님이 분부한 모든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 지키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다른 일에 바쁘면 안된다. 맡긴 영혼들을 숫자와 상관없이 있는 자리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이다.
지금은 악한 시대다. 갈수록 어려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제는 교회가 본질에 집중해야 하는데 각 사람을 가르쳐 제자를 삼는 일에 온힘을 쏟아야 한다. 한 영혼에 목숨을 걸고 밤낮주야로 눈물로 각 사람을 가르치고 경계한 바울의 에베소 목회를 본받아 우리가 그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다시 제자 삼는 일이 지속되어야 한다. 이제 한국교회는 이 일에 얼마나 헌신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핵심은 간단하다. 이제는 말씀에 축 빠져들게 하는 교회와 이것을 경험하는 제자가 세워지느냐에 초점을 모우고 이일에 모든 교회가 협력하고 하나 되는 일이다. 서로 용납하고 섬기고 권면하고 격려하고 도와주며 말씀 속에 깊게 들어가도록 모든 지혜와 물질을 모아야 한다.
이제 더 이상 헤메지 말고 나를 구원을 주신 영원한 말씀을 붙잡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한국교회와 우리 모두가 되자. 일어나 함께 가자. 비록 나를 파는 자가 왔다 할지라도,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있다 할지라도 그 말씀을 응하기 위해 모두를 버리신 주님의 십자가 길을 우리도 따라 가도록 기도하자. 여기에는 경쟁과 비교와 차별과 시기와 질투가 없다. 오직 하나됨만이 존재한다,
성경 그 속으로 깊게 들어가자 . 예즈덤 미리토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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