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도 하브루타가 무엇인가? 하고 물으면 누구도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 이여기 되는 하브루타는 각자 다른 하브루타다. 누구나 몇 달되면 하브루타를 한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너무 쉽게 접근하다 보니 지금은 너나 우리등 모두가 하브루타를 할수 있다고 말한다. 질문하면 그것이 곳 하브루타로 인식하게 한 것은 하브루타의 어려운 점을 삭제하고 쉬운 필요한 내용으로 하브루타를 소개했다. 그러다 보니 하브루타의 오해가 많은 상태에 처해 있다.
먼저 하브루타 이야기를 하면서 생길수 있는 이름에 대한 개념정리가 필요하다. 그것은 하브루타란 이름으로 많은 오해가 생길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름에 대한 기념정리가 안되면 전달에 오해가 생길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하브루타란 이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한 하브루타 정의는 ”서로 짝을 지어 질문과 대화와 토론을 하는 교육방식으로서 하브루타“이다, 하지만 이것은 혼란을 줄 수 있는 정의로 수정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하브루타란 말은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는 정의다.
첫째, 광의의 하브루타 문화를 우리는 유독 공부와 교육에 국한 되어 사용되는 점이다.
하브루타는 어원에서 보듯이 친구와 함께하는 문화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품앗이와 서로 함께 하는 두레 문화와 같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결혼식때 축의금을 꼭 한다. 그것은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에 가정의 결혼식은 큰 일인데 이때 서로 축의금을 통해 어려운 일을 치루는데 돕는 품앗이 방식이었다. 지금은 이것이 많이 변질되었지만 다른 나라는 이런 문화에 대해서 잘 이해를 못한다. 미국이나 서구사회는 우리나라처럼 3백명 정도의 많은 사람들이 결혼식에 오지 않는다. 가족과 지인으로 소박하게 결혼식을 하는 문화다.
유대인의 하브루타도 역시 같은 방식이다. 유대인은 어려운 고난을 수천4년 동안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서사로 함께하는 하브루타 문화가 형성되었다. 그것이 고난을 이기는 비결이었다. 이것은 유대인사회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형성되었는데 그것이 하브루타이다. 이런 하브루타의 원리는 다양한 삶의 영역에 적용되었다. 공동체. 가정. 학교. 사업. 창업. 인간관계. 비즈니스. 생활등 모든 삶의 영역에 적용되고 있는 것이 하브투다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전반적인 유대인의 역사와 문화의 이해가 없이 공부의 한 부분의 모습을 보고 그것을 하브루타 교육이라고 쉽게 적용한 것이 오해 소지를 갖게한 이유다.
만약 어떤 나라가 한국의 두레를 보고 공부에 적용하여 두레 공부법이라고 말하면 우리도 모르는 새로운 공부법이 생겨난 것이다. 두레는 공부법이다 라고 말하면 우리나라 사람은 의아해 할 것이다. 지금 하브루타가 우리나라에서 이런 상황이 되고 있다. 거기에 유대인의 노벨상등 탁월성을 적용하여 효과를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본질을 벗어난 것이다. 자칫 무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더 큰 문제를 야기 할수 있다.
둘째, 설사 하브루타의 원리를 교육방식에 적용했다고 보더라도 이것 역시 잘못 응용했다는 점에서 재정의가 필요하다.
지금 한국의 하브루타교육 정의는 본래 유대인교육과는 거리가 있다. 엄밀히 보면 유대인이 하브루타란 말을 사용했지만 유대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정체불명의 하브루타 교육이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그 이유는 처음 정한 우리나라 하브루타 교육의 정의는 ”서로 짝을 지어 질문과 대화와 토론을 하는 교육“ 방식이다. 이것은 본래 유대인 교육의 정의가 아닌 한국교육방식의 정의다. 유대인교육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신앙공동체 속에서 성경을 배운 랍비를 통하여 성경본문을 서로 함께 질문과 토론하며 실천에 이르는 교육법의 원리중에서 친구와 함께 짝을 지어 질문과 토론하는 부분만 선택하여 하브루타라고 정의 한데서 하브루타는 유대인과 관련없는 한국형 하브루타가 만들어졌다,
현재 정의되고 있는 하브루타 교육의 정의는 엄밀히 보면 유대인교육이 아니다, 이전부터 우리도 하고 있는 질문토론 학습법과 크게 다를바가 없다. 상호 짝을 지어서 하는 토론 학습과 다른 점이 없다. 그런데 왜 이것이 유대인 하브루타 학습법으로 되었는지 유대인을 바르게 이해 했다면 이런 정의를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인과 문화를 잘 모르면 외국인도 이렇게 말할수 있다. 유대인에게 책은 성경과 탈무드를 말한다. 일반 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의 공부는 성경과 탈무드를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 하브루타 교육의 정의에는 유대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경이 없다. 또 짝을 지어서 하는 것이 하브루타교육방식으로 이해하는 것 또한 한부분만 본 것이다.
유대인에게 책은 성경과 탈무드를 말한다.
일반 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의 공부는 성경과 탈무드를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 유대인이 하브루타 형태로 공부하는 방식은 혼자서. 짝을 지어서. 아니면 세명 이상으로 모여서, 랍비들이 학생들 앞에서 긴 시간 동안 강의 형태를 하는 다양한 모습이 있는데 이런 것은 제외하고 둘씩 짝을 지어서 질문하는 것이 하브루타라고 정의한다면 이것은 바른 이해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는 너도 나도 하브루타교육을 한다고 두명씩 짝을 지어 질문하는 교육 방식이 유행처럼 일어나 열풍이 불고 있다. 심지어 이런 방식을 하브루타교육이라고 말하면서 교육부에서도 적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지금이라도 하브루타교육의 바른 정립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잘못된 정의는 많은 비교육적인 모습을 양산하고 있고 한국교육을 오히려 거꾸로 가는 주범이 되고 있다.
교육은 장기적으로 길게 보면서 해야 함에도 빠르게 하브루타란 이름으로 새로운 교육 방법처럼 번지는 것은 교육의 미래를 볼때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이런 한국식의 정의는 처음부터 하브루타 자격증이라는 비즈니스적인 제도가 만들어지면서 갑자기 하브루타가 한국에서 유치한 교육법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깝다. 교육이 단기간 자격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에도 단기간에 너도 나도 하브루타 교육자격증을 얻으려고 필자에게까지 오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가 공부자체 보다는 졸업장을 얻고자 공부하는 병폐를 그대로 닮았다는 점에서 한국의 하브루타 교육은 출발부터 원리가 어긋났다.
만약 한국의 이런 모습을 유대인이 들으면 의아할 모습이다. 그것도 10회 정도 시간만 이수하면 자격증을 발급하여 하브루타 교육을 한다고 하면 한국교육의 미래는 암담하다. 이것은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기어 부실한 교육을 양산하는 모습으로 변질되나는 점에서 모든 하브루타 교육단체의 새로운 개혁이 필요하다. 이것은 유대인과 하브루타란 이름을 사용한 뿌리 없고 교육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교육의 미래를 위해서 이것은 한번 점검하고 넘어가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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